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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15 21:14

기억의 정치...에 대한 반론



 "선배, 사실이란 존재하는 것일까요?"

 며칠 전 김규태 선배와 어울리지 않게 브런치를 했습니다. 브런치 그거 좋더만요.
따스한 햇살에 방금 구워 낸 빵과 그윽한 향이 일품인 커피 한잔 덕분에 철학적인 이야기를 많이 나눴습니다. 김규태 선배 대학 때 전공이 철학이지요...
 
 요즘 학계에서는 이른바 <기억의 정치>라는 게 유행이라고 합니다. 기억의 정치는 과연 진실이라는 것이 있는가 일단 되묻습니다.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것은 각자가 선택적으로 확보한 기억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것이어서 누가 기억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역사로 믿고 있는 것조차 누군가의 기억에 의존한, 특히 권력자의 입맛에 맞춘 기억과 의미 부여가 아니냐고 말입니다. 

  '사실(Facts)'를 갈구하는 기자 입장에서 기억의 정치 논리는 꽤나 괴롭게 다가옵니다. 역사적 사건이라는 것도 누가 어떻게 기억하느냐의 문제라면, 60억명의 지구촌 사람 중에 일개 1명인 내가 좇아다니는 사실들이 얼마나 중요할까, 진실에는 과연 근접조차할 수 있을까...허무에 빠지게 만듭니다. 

   김 선배는 "현실은 구성되는 것이다. (이 말은 인간이 완벽한 현실은 알 수 없고, 여러가지 우리가 보고 듣는 것을 조합해 현실을 구성해낸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현실을 구성하는 사실(Facts)들이 많으면 많을 수록 '실제 현실'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저에겐 한줄기 광명과 같이 다가왔습니다.   
 
   만약 곰이 사람이 무서워 도망쳤다고 합시다. 그 장면을 한 사람이 본 것보다 여러 사람이 동시 다발적으로 봤다면 그 장면은 진실 혹은 현실에 더욱 가까운 것이 될 것입니다. 한 사람은 잠시 착각하고 잘못 기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어떤 권력자는 자신의 용맹함을 드러내기 위해 곰이 도망갔다고 각색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 사람이 동일한 사건에 대해 다 같이 잘못 기억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현실을 구성하는 사실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진실을 왜곡하기는 좀더 어려워지지 않을까요?  한 사람이 건져 올린 하나의 사실(Fact)보다는 여러 사람들이 건져 올린 여러 개의  사실(Fact)이라면 구성력이 더 높지 않을까요?  

  기자나 역사가들이 해야 할 일은 역시 더 많은 사실을 건져 올리는 것일 것입니다. 물론 많은 정황들이 있다고 해서 어떤 사건을 이렇다, 저렇다 단정 지을 수 있다고 100% 확언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확률적으로는  더 많은 사실을 확보하는 것이 진실에 좀더 가까이 갈 수 있는 길이라는 점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현재 미디어 상황은 어느새 의견이 사실을 과도하게 압도하고 있다고 앞서 지적했는데요.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다르더라도, 편의상 좌우 색깔이 다르더라도, 두 진영이 사실을 좀더 많이 확보하는 데 노력을 기울인다면 지금과 같이 끝없는 평행선을 달리지는 않을 듯 하네요.

  사실의 양(量) 문제에 좀더 관심을 기울여야겠습니다.


<한걸음 더>
 
PS. 좌우는 의견이 다른 두 개 진영이라는 뜻으로 편의상 썼습니다. 유럽식 관점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좌우 대립도 아니고 우우 대립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더군요. 

PS2 .  기억의 정치의 효용성에 대해서는 동의합니다.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많은 역사적 사건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것을 주문해주기 때문이죠. 그러나, 기억의 정치에 너무 매몰되면 사실의 힘을 간과하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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